아내가 결혼했다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볼만하고 많은 생각거리를 던지는 작품이다. 그 생각들이 설령 기존 관념들에 비춰 불경스럽고 불쾌할지라도. 감독은 2천년전 만들어진 일부일처제 기반의 결혼이라는 제도가 불합리한 건 아닌지 도전하고 있다. 한 여자가 두집살림을 하는 다소 급진적인 방식으로. 사회의 많은 면이 2천년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으므로 결혼이라는 제도 또한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논리다. 일종의 관습이 되어버린 일부일처제에 의문을 던지려는 시도 자체는 큰 의미가 있지만 더 나은 대안이 없이 무책임한 의문제기에 그치기에 작품 내용에 크게 공감할 수는 없다. 작품속 손예진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일처다부제는 정말로 사랑에 사랑을 더하는 걸까? 혼자만의 욕심 (그것이 성욕이든 보호욕이든)을 채워 더 큰 자기만족을 얻기 위한 이기심의 끝이 아닐까?배우자의 불행과 슬픔엔 전혀 관심 없이 무책임한 태도로 자신만의 안위를 좇으며 상대방의 이해를 강요할 것이었다면 애시당초 일부일처제란 틀 안에서의 상호 서약으로 이루어진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만 했다. 이런 맥락에서 아내가 결혼했다의 손예진이 전달하고자하는 메세지는 결국, 약속을 깨고 자기만족을 위한 배우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무책임한 이기심의 발로에 그치지 않는다. 이런 논리적 모순이 이 작품이 불편한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