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6, 2011

Tout ce qui brille

이른 봄날의 시원한 저녁 공기가 가득한 대학로 한 모퉁이의 극장에서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영화 Tout ce qui brille는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좋은 영화였다. 빛나는 모든 것이 결국 인생의 답은 아닌 법.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는 주제를 프랑스 영화 특유의 발랄함과 재치로 재밌게 풀어내고 있다. 자본 주의와 시장경제는 인간의 삶을 과연 진정으로 풍요롭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소비하게끔 만드는 악순환 속에서 우리는 모두 삶의 진실한 행복과 가치를 잊고만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류의 책은 참으로 멀리 해오던 나였기에, 어느날 서점 베스트 셀러 코너의 맨 위쪽을 차지하고 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집어 들게된 건 우연이었다. 구구절절 마음에 와닿는 좋은 "잔소리"들을 마치 친근한 어르신이 들려주듯 쉽고 편하게 들려주고 있지만, 그 쉽고 편안한 이야기들이 조금은 너무 당연해보이고 조금은 너무 가벼운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조금 더 어렸을 때 읽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이제 갓 만 스물 여섯 밖에 되지 않은 내가 이처럼 애늙은이처럼 이 책의 이야기들을 받아 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씁쓸했던 게 사실이다.

Before Sunrise


Before Sunrise를 다시 보았다. 웬만해선 영화를 두번이상 보지 않는 내가, 10년전에 한번, 5년전에 한번 본 이후로 다시금 보게되었다는 것이 희한할 정도로 특이하지만 세번째로 본 Before Sunrise는 또 다른 감동을 전하는 것만 같았다. 조금은 치기 어린 Jesse와 Celine의 첫만남부터 헤어짐까지. 그 언젠가 도쿄의 어느 낯선 거리를 걸으며 새로운 만남을 이어가던 그때 나의 모습도 지금의 내가 바라본다면 이만큼 쑥쓰럽고 또 그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상하게도 잠시 마음이 먹먹해졌다. 영화 속 두 사람처럼, 그 시절 도쿄의 내 모습처럼 다시 한번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까.

Sunday, February 13, 2011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불안>에서 접한 최초의 놀라움이나 담백함은 덜 하지만, 알랭드보통의 이 처녀작은 스물 다섯의 젊은 청년이 썼다고 믿기 힘들만큼 깊이 있는 고민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조금은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조금은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풋풋한 사랑의 시작과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이르기까지의 감정을 섬세하고 철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고자 시도하며, 독자로 하여금 익숙한 감정들은 새로운 관점에서 고민해보게끔 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완숙도보다는 신선한 시도라는 측면에서 읽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Saturday, February 12, 2011

울지마 톤즈

우연한 계기로 울지마 톤즈를 관람하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감동을 받았다. 큰 감동만큼이나 반성 또한 컸다. 정말로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 진정 성공한 삶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되살펴 보게 된다. 아울러, 종교의 의미가 이렇게 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 또한 감출 수가 없다. 내게 종교란 무엇일까. 내 삶에서 종교란 어떤 의미로 받아 들여야 할까.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님의 영향으로 천주교인으로 태어난 내가 스무살이 되고 머리가 커짐에 따라 종교에 회의를 느끼고 그 의미를 다시 찾아보고자 한 것은. 이제, 학창시절 열성적이었던 예전의 신앙생활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의 종교 생활을 찾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종교를 통해 1) 삶 자체에 대해 감사할 수 있고 2)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울 수 있고 3)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었으면 한다. 삶의 나침반이랄까.